[칼럼 - 한정찬] (시) 숲에 앉아

[한국공공정책신문=최진실 기자]  시인 한정찬의 "숲에 앉아"


 

숲에 앉아

 

 

1

 

먹구름이 숲을 덮자
하늘이 나무의 키만큼 내려왔다.

 

벼락 하나
허공에 흰 뿌리를 내렸다가 사라진다.

 

잠깐 환해진 잎맥마다
푸른 피가 번쩍이고

숲은 쓰러지지 않는다.

 

흔들리는 것은 가지였고
숨은 끝내 잎을 떠나지 않았다.

 

 

2

 

햇빛은 산 너머로 길을 접고
바람은 입술을 다문다.

 

산빛이 물빛 속으로 스미자
계곡은 제 목소리를 낮춘다.

 

돌 하나가 물속에서
백 년을 뒤척인 끝에 둥글어졌듯

말보다 먼저 깊어지는 것이 있다.

 

나는 개울가에 앉아
흐르는 것이 물인지
시간인지 오래 바라본다.

 

 

3

 

시간은 떠나는 법을 알고
숲은 남는 법을 안다.

 

하루는 낙엽 한 장처럼 쌓여
어느새 한 생의 결을 만든다.

 

아무도 푸르름을 붙들지 않았는데
나무는 해마다 잎을 새로 달고

아무도 젊음을 부르지 않았는데
산은 늘 첫날의 빛으로 서 있다.

 

나는 숲에 앉아
한 사람의 생애도
한 그루 나무처럼 푸를 수 있는지

늦도록 바람이 지나간 자리를 바라본다.

 

 

▲한정찬/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한국공공정책신문

 

한정찬

□ 농업인(小農), 전업 시인, 행정안전부 안전교육전문강사,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소방안전컨설턴트 외

□ (사)한국공무원문학협회 고문, (사)한국문인협회원, (사)국제펜한국본부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외

□ 시집 ‘한 줄기 바람(1988)외 29권, 한정찬시전집 2권, 한정찬시선집 1권’ 외

□ 농촌문학상, 옥로문학상, 충청남도문화상 외

 

 

 

 

작성 2026.08.06 16:25 수정 2026.08.0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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