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 시선> 한가위 미사 중 만난 며느님들

우리를 돌보던 그 손길들



 

추석 즈음 베론성지. 사진: 김수경


얼마 전 추석이 지났습니다. 어릴 때 한가위는 모든 게 풍요로웠습니다. 매년 추석이면 돌아가신 조상을 위한 한가위 미사, 합동 위령미사에 참례하며 옷깃을 여밉니다. 돌아가신 부모님, 조상님, 그분들의 영원한 안식을 미사 중 기리는 거지요. 그러면서 ‘내가 살 날도, 또 나를 기억해 줄 사람이 이 지상에 남아 있을 시간 또한 그리 길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신부님의 강론은 감사, 나눔, 기억 등 조상에 관한 건데 ‘기억’이라는 단어에 머문 저는 어린 시절, 추석으로 미사 중 여행을 떠납니다. 아버지는 8남매의 맏이였고, 우리 사촌은 20여 명이었지요. 명절이면 우리는 할머니 댁에 모여 1박을 했습니다. 부엌은 늘 분주했지요. 그 식구들이 먹을 음식과 차례상 음식을 계속 마련해야 했으니까요. 사촌들은 집 안팎에서 뛰어놀다 고구마전 등 간식을 먹으며 풍성하고 맛난 식탁 덕분에 더 즐거웠지요. 아이들이었으니 누구의 수고로 그리 편히 즐길 수 있는지, 요샛말로 1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부엌에서 조리된 음식은 안방과 대청에 내와서 40여 명의 네댓 끼 식사와 간식이 됐습니다. 온 가족이 집안을 정갈하게 쓸고 닦았고 추석날 아침에는 차례상이 차려졌지요. 엄숙하기까지 한 제례 중간중간 터져 나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상을 물릴 때면 무슨 음식을 먼저 공략할까 눈독 들이는 사촌들을 어른들은 너그럽게 봐주셨지요. 그렇게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그 많던 식솔은 명절과 기제사, 생신 등을 위해 일 년 중 여러 차례 모였습니다. 하하 호호, 가족 대항 게임도 하며 즐겁게 지냈으니 사촌 간도 스스럼없이 친했지요.

 

누군가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화목함

그러다 어느덧, 한 가정의 주부로 그 시간을 돌아보니 과연 모든 구성원이 명절을 즐겁게 보냈는지 확신이 없습니다. 할머니 댁 며느리들, 어머니와 작은어머니들도 과연 행복했는지 의문이 드는 겁니다. 대식구를 위해 끊임없이 부엌에서 음식을 하던 노동은 고스란히 며느리들 몫이었지요. 이제 한가위 미사에서 신부님의 강론을 듣다가 문득 마음이 짠해집니다. 제대로 식사는 하셨을지, 허리 펴고 쉬긴 하셨는지, 가족 모임이 며느님들께 부담되지는 않으셨는지 말입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만드는데 수고해 주신 할머니 댁 며느님들께 오랜 세월이 지나, 네 분이 고인이 된 시점에야 깊은 감사를 드리게 된다니요. 누군가의 희생으로 가정의 화목이 유지되고 있는 건 아닌지, 가족 중 힘들었을 분은 누구였을지 그 지점에 마음이 머무는 건 어느덧 나이 듦이 주는 지혜입니다.

‘주님, 저희를 위해 시간과 정성을 내어 주셨을 귀한 분들께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빛을 비추소서. 또한 영원한 안 식을 주소서!’

고인이 되신 할머니 댁, 네 분 며느님. 어머니와 세 분의 작은어머니를 기억해 영원한 안식을 위한 기도를 드리는 한가위 미사였습니다.

 

 

 

 

K People Focus 김수경 칼럼니스트 (ueber35@naver.com)

이화여자대학교 독문학 학사

한국상담대학원 대학교 석사

함께성장인문학연구원 치유코칭백일쓰기 강사 

출간 『저무는 게 아니라 깊어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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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10.03 21:55 수정 2026.10.04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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