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의에서 막힘없이 발표하는 선배를 본다. 저 사람은 떨리지도 않나 보다 생각한다. 내 차례가 오면 목소리부터 떨린다.
회사를 그만두고 가게를 연 친구가 자리를 잡았다. 걔는 원래 겁이 없었다고들 한다. 나는 사직서를 몇 년째 서랍에 넣어 두고 있다.
마흔이 넘어 새 공부를 시작해 자격증을 딴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대단하다고 감탄한다. 그리고 한마디 붙인다. 나는 그런 용기가 없어서.
가정해본 세 장면에는 같은 계산이 들어 있다. 남의 두려움은 0으로 놓는다. 내 두려움은 있는 그대로 잰다. 그러면 답은 늘 하나다. 두려운 나는 아직 자격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남의 두려움을 볼 수 없다. 발표 전날 밤 떨던 시간은 회의실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직서를 내던 날의 불면은 개업 사진에 찍히지 않는다. 우리가 보는 건 결과뿐이다.
이 착각과 맞닿은 연구가 있다. 2011년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가 있다. 사람들이 남의 감정과 경험을 어떻게 짐작하는지 살폈다. 사람들은 남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겪는 정도를 실제보다 적게 짐작했다. 잘 아는 사람을 두고도 그랬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이 긍정적인 감정보다 남에게 덜 드러난다고 답했다. 연구진은 부정적인 감정을 감추는 일이 이런 오해를 만드는 이유 중 하나라고 봤다. 남들이 부정적인 경험을 겪는 정도를 낮게 짐작한 사람일수록 더 외롭다고 답했다. 남들도 힘들다는 사실을 잘 보지 못할수록 나만 힘들다는 느낌이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두려움도 그렇게 숨기기 쉬운 감정이다. 떨리는 사람은 대개 떨리는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쓴다. 그래서 남들은 다 괜찮아 보이고, 나만 겁이 많은 사람이 된다.
남을 0으로 놓으면 편한 점도 하나 있다. 내가 시작하지 않을 이유가 생긴다.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자격증을 딴 사람의 용기를 칭찬하는 순간, 나는 공부를 안 해도 된다. 착각이라기보다 핑계일 때가 많다.
나도 오래 그렇게 살았다. 익숙하고 편한 것을 골랐다. 낯선 일은 시작하지 않았다. 못하는 모습을 보일까 봐 무서웠다. 마흔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내 생각을 꺼내 놓는 일이 발가벗겨지는 느낌이었다. 내 이야기는커녕 내 생각을 담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러니 글이 겉돌았다. 용기를 내 조금씩 나를 글에 담았고, 점차 수월해졌다.
지금 내 글을 읽는 누군가도 그럴지 모른다. 저 사람은 겁 없이 썼겠지, 하고. 그 사람 눈에도 내 두려움은 0이다. /물론 두려움이 늘 핑계인 것은 아니다. 준비가 모자라다는 신호일 때도 있다. 그럴 땐 멈추고 준비하면 된다. 두려움이 아예 없는 사람이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다. 겁이 없으면 살피지 않고 뛰어들기 쉽다.
다만 남과 나를 견줄 때는 계산부터 바로잡자. 부러운 그 사람에게 처음에 어땠는지 직접 물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가게를 연 친구에게 개업 전날 밤 잠은 잘 잤는지 물어보자. 어떤 답이 돌아오든 결과만 보고 한 짐작보다는 정확하다. 내 두려움을 먼저 꺼내 보는 것도 좋다. 많은 사람이 숨기니 저마다 나만 겁나는 줄 안다.
결과만 보면 누구나 겁 없는 사람이 된다.
오늘 내가 0으로 놓은 사람은 누구인가. 그 0을 핑계 삼아 미뤄 둔 일은 무엇인가.
[박근필]
그로쓰 퍼실리테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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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필성장연구소장, 수의사, 작가, 칼럼니스트,
강연가, 커리어 스토리텔러
저서 : <할퀴고 물려도 나는 수의사니까>
<나는 매일 두 번 출근합니다>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
<방구석에서 혼자 읽는 직업 토크쇼>(공저)
<당신의 원고는 왜 계약되지 않는가>
독저팅, 필레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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